들어가며
‘이달의 창우’는 느닷없이 생각난 아이디어였습니다. 작곡가 윤종신 씨가 ‘이달의 윤종신’이라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오시며 그의 재능을 증명하신 것에 감명받았습니다. 저는 윤종신 씨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고,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그가 하는 것처럼 한 달간 내가 한 것을 돌이켜 보고, 내가 한 사소하고 시시한 것들이라도 뒤돌아보면 어떨까? 그중 괜찮은 것들을 모아 한 달에 한 번, 나름대로 장식해 둔다면? 기록에 좀 더 깊은 의미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록이란 건 돌아보고, 또 거기서 의미를 찾아 새로운 계획으로 향할 때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정말 초라하고, 또 당장은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 할지 전혀 감이 없지만, 이렇게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1호는 2026년의 일일 노트를 제대로 시작한 1월 27일부터 시작해 2월 28일까지, 한 달보다는 조금 긴 기간에 있던 일들을 돌아봅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한 달의 처음부터 말일까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디지털 디톡스
제 삶의 디버깅이 시작되었습니다. 1월 14일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계속 쇼츠나 동영상에 노출되어 중독 증상이 심했던 것을 드디어 자각했습니다. 원인은 침대에 놓아 둔 태블릿 스탠드었습니다. 이렇게 글로 적으니 간단한 일이지만, 이것을 자각하고 실천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새벽까지 누워 쇼츠를 보다 지쳐 태블릿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 문득 깨달았습니다. 정신은 한없이 지쳐 있고, 육체적으로는 눈과 뇌를 연결하는 신경 정도는 퉁퉁 부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외엔 전혀 힘든 것이 없었습니다. 굉장히 언밸런스함을 느꼈습니다. 정신이 이렇게 고갈되는데, 어떻게 이렇게 육체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혹시 내가 겪는 우울증은 여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육체적으로는 거의 부담이 없는 상황에 정신적으로는 이렇게 혹사된 상황은 내 뇌는 ‘우울함이 심하다’로 해석하는 것은 혹시 아닌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소위 ‘디지털 디톡스’가 심각히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계속 망설였지만, 더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태블릿을 이렇게 침대에 두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용기를 내어 스탠드를 치웠습니다. 침대에 가급적 디지털 기기를 끌고 오지 말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처방은 단지 부품에 굴러 들어와 끼인 작은 돌 하나를 제거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점점 변화를 불러오기 시작할 줄은 꿈에도 그 시점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장 쇼츠를 볼 수 없으니 불안감이 몰려 오더군요. 그렇지만 오히려 그 불안감을 통해 어느샌가 느긋함에 익숙하지 못해 즉각적인 쾌감에 절여져 있는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나름대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숨쉬면서 생각이 나면 생각이 나는대로, 지루하면 지루한 대로 가만히 있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명상 중 생각난 것이나 느끼는 지루함 등등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때때로 메모해 두었습니다.
눈덩이 효과
결론적으로 이 ‘디지털 디톡스’가 가져온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작은 것 하나, 태블릿 스탠드를 방에서 치운 그 단 하나의 행동이 불러온 효과는 눈덩이 효과, 요즘 자주 회자되는 “스노우볼이 굴러간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명상을 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이미지는 이런 것입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보급되기 전의 사람들의 행동은 어떠했나? 그냥 느긋이 있거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저는 정말로 오래간만에 진정한 느긋함을 되찾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주변에 방치해 둔 여러가지 것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방치해 둔 제 방, 몸, 관심사 등… 이런 묵혀둔 것들이 이제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도파민 절임”
하나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제 인생을 통틀어 저는 그저 ‘도파민 절임’에 불과한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유튜브 쇼츠라는 맹독성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저를 지배했고, 또 그러고 있더군요? 카페인, 게임, 소셜 미디어, …
이렇게 보니 조금 과장하자면 제 삶은 도파민이 이끄는 대로, 그냥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무계획에 가까운 즉흥적인 계획으로, 도파민이 충족되는 대로 일을 정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dopamine-driven-scheduling’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게 정말 필요하지만 조금은 힘들고 엄한 일들은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 피해왔던 것이죠. 힘들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서 어떻게든 해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이죠.
다양한 일과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
내가 이렇게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또 이렇게 힘있게 밀어붙일 수도 있구나를 다시 체험했습니다. 무리하여 진행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 아, 일이나 개인 프로젝트라고 쓰긴 했지만, 거창한 것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너무 자잘해서 여기에 일일이 써 두지는 않지만, 그냥 그동안 방치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을 정리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개인 프로젝트 또한 정말 장난감 수준의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몸을 움직여서 실천해서 해 낸다는 사실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월말이 되어 돌아보니 그 양이 상당하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니까 시작점이라서 시시한 허드렛일 같은 것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꾸준히 하다 보면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할 일들을 점차 생각해 내고 또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기록의 의의를 찾음
저도 은근히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인생에서 꽤 많이 한 일 중 하나가 새 노트를 사서 일기를 몇 페이지 적고, … 방치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무얼 기록하는 일은 감성적인 차원에서 머무는 일이 많았습니다.
‘캘린더’ 같은 앱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 내 달력은 항상 이렇게 비어 있지? 왜 나는 아무 것도 안 하지?
사실 이것은 악순환이었습니다. 일을 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라 파악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끈기있게 기록하지 못한 것은 이 기록을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이런 일기나 기록은 중요한 메모 정도나 한 10년쯤 우연히 뒤돌아 봤을 때 “아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면서 회상하기 위한 용도로만 여겼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나는 무얼 원하는지, 또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하는지, … 이런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선 기록 없이는 안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기록이 없으니 계획이 생길 수 없고, 계획이 없으니 미래상이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록을 해야 “궁극적으로는 내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이 구체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치며
지난 1월, 우연히 그러나 직감적으로 ‘도파민 디톡스’라는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 않고 무시하고 넘겼다면 저는 계속 우울의 늪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저 주변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겠죠.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되돌릴 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참 멍청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지금 좀 늦은 감도 있지만 더 늦기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이달의 창우’는 미래의 저를 위한 이정표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달의 창우’는 두가지 노선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노선은 지금처럼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입니다. 좀 더 정리된 언어로, 타인에게 소개하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그 달을 대표할 수 있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MBTI ‘F’ 성향이 짙은 만큼 감성적인 느낌도 더 강하게 담을 생각입니다.
두번째 노선은 비공개로서, 제 개인 노트에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을 복기하고 정리합니다. 첫번째 노선인 블로그 포스팅을 작성하기 위한 중간 과정이기도 하지만, 한달 동안 있었던 일을 보다 상세하게 요약 정리해 두고자 합니다. 결산 같은 것이죠. 언제든 허무한 느낌이 들면 이 노트에 적힌 이달의 창우 포스트를 보면서 “그래도 내가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습니다.
‘이달의 창우’가 계속되어, 앞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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